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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을 속이면….
알티베이스™ 라이프

이렇게 자신을 속이면 절대 성공 할 수 없다…



거짓말 1 “어떻게 그런 일을 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미국 PGA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우승 신화를 이룩한 최경주. 
PGA에 대한 그의 도전은 처음엔 무모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로라
하는 골퍼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성공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체류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PGA에 도전하기로 하고 5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했다. 
그 안에 PGA에 입성하지 못한다면 깨끗이 포기할 생각이었다.
영어도 공부하고, 양식에 익숙해지기 위해 계란을 넣은 샌드위치나
소시지 따위를 먹기 시작했다. 
1998년 PGA로 가는 관문인 큐스쿨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다음해 다시 도전, 이번에는 ‘조건부 출전권’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시작일 뿐이었다. 낯선 필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경기는 안 풀렸다. 조건부 출전권을 갖고 있던 터라, 결원이 없으면 출전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말이 안 통하고 지리를 잘 몰라,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에 지각하기 일쑤였다. 

모텔에서 새우잠을 자며 미국 전역을 오가는 유랑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름 없는 동양 선수에 
대한 차별 대우도 견뎌 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2002년 5월 PGA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신화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의 도전은 미국 사람들에게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골프장 하나 없는 동네에서 오로지 교본 하나만 보면서 연습했다고 하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연습한 사람이 어떻게 PGA 우승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불가능을 불가능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특출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은 결코 특출한 것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갖출 수 있다. 
어렵지만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은 결국 어려움을 넘어서고야 만다고 최경주는 말했다.
어려울 때 돌아가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거짓말 2 “상황이 좋지 않아”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이며 신문왕으로 불리는 퓰리처는 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군인이 되고자 했다. 
땡전 한푼 없는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그는 유럽에 있다가, 남북전쟁에서

싸울 신병으로 모집되어 미국으로 왔다.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그는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선원의 자질을 갖고 있던 그는 포경선 선원이 되려고 했지만, 배의 선장이

그에게 퇴짜를 놓았다.

이번에는 뉴욕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막노동이나 허드렛일을 하려고 해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일을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는 다 해어진 군복과 닳아빠진 구두 차림으로 거리에서 잠을 자야 했다.

이번엔 세인트루이스로 갔다. 거기서 연락선을 타고 화부 일을 하기도 하고, 군 부대에서 노새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밑바닥 직업들을 전전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기도 당했다.

누군가 그에게 루이지애나 사탕수수 농장에 일자리를 주겠다고 해서 5달러를 냈지만, 
그는 황량한 곳에 내팽개쳐졌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사기 당한 얘기를 들은 한 기자로부터 그 사기극에 대한 글을 요청 받으면서 그는 언론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베스틀리헤 포스트 신문사에 취직한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엄청난 양의 훌륭한 기사들을 제출했고, 충격적인 뉴스들을 취재했다.
취재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과 엄청난 끈기 덕분에 그는 급속히 승진하여, 

이 신문의 동업자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이름을 기리는 퓰리처 상이 만들어진다.

시작할 때의 상황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은 좋을 때도 시작하고, 나쁠 때도 시작한다. 
상황이란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상황에서 틈새가 보이지만, 
핑계를 대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환경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도 나쁜 조건을 찾아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3 “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이태원이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하는 내내 가졌던 고민이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노래를 못할까.’ 다른 한국 학생들과 비교해도 자신은 너무
뒤떨어지는 것 같았다. 
점점 클래식에 흥미를 잃었으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 그만두고 결혼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너무 주눅이 들어
나중에는 남들 앞에서 노래를 연습하는 걸 꺼리게 되었다.

연습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편안하게 나오지 않고 성대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 몇 번만 불러도 목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목소리가 생각하는 대로 안 나와 화가 북받쳐 올라 주먹으로 피아노를 내리치기도 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의 노래는 점점 더 듣지 않게 되었다. 
줄리어드를 졸업하고 피바디 음대에 다니던 어느 날, 그 대학의 보이스 코치가 물었다.

“태원, 이 악보에 적힌 용어가 무슨 뜻인지 아니?”

“아니오.”

“흠, 네가 이 용어의 뜻을 모르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분명 네 안에는 음악성이 살아 있는 거야. 음악성에 관한 한 너는 천재구나.”

교수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너는 천성적으로 좋은 악기를 타고났어. 네 목소리가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 줄 아니?”

그렇게 해서 자신감을 갖게 된 이태원은 교수들의 추천으로 각종 콩쿠르에 참가했다.
1995년에는 애니폴리스 오페라 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자신감은 증폭되었다.
이후 학교를 대표해서 나가는 콩쿠르는 그녀가 도맡다시피 했고, 늘 상을 받아 왔다. 
나중에 그녀는 <명성황후>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받게 된다.


거짓말 4“성공은 남들 일이야”










전설 속의 그룹 비틀스. 비틀스는 결성될 당시만 해도 전혀 눈에
띄지않는, 그저 수많은 신생 그룹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정규 교육을 받은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네 사람 모두가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다.

폴 매카트니는 악보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드럼을 쳤던 
링고 스타 역시 무작정 드럼을 두드리면서 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들은 늘 성공을 꿈꾸었고, 그 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순차적인 단계를 생각했다. 
조그만 성공은 반드시 다음 단계로 연결되어야 했다. 
리버풀의 캐번 술집에서 처음 연주를 시작했을 때, 다음 단계는 음반 녹음이었다. 
그 다음은 인기 차트에 올라 리버풀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최고의 그룹이 되는 것이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항상 목표를 몇 걸음 앞에 두었다. 성공을 향한 강한 열망은 그들로 하여금 뜬구름 같은 희망 대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했고, 
매번의 달성은 멈추지 않고 다음 번 목표로 도전하게 만들었다.

존 레넌은 사람들이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지의 것도 존재하는데,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든 사람이 환상을 좇아 허둥대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것이 미지의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앞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짓말 5 “인맥이 있어야 뭘 하지”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방송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지니 오.

그녀가 시카고 NBC 뉴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번은 방송국 내에서 새로운 프로듀서 자리가 생겨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방송국 내에 아무런 인맥이 없던 지니 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력을 쌓은 수많은 경쟁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백인 앵커도 사람을 추천할 때는 자신의 인맥을 적극 밀었다.

그녀는 그저 열정과 실력만 믿고 있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시아계 여성일 뿐이었다. 
그런데 방송국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벌어졌다. 인사 관행을 깨고 지니 오가 선택된 것이었다.
그것도 최연소 취재 프로듀서였다.

지니 오가 처음에 방송국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명도 있는 교수나 방송국에 근무하는 사람의 추천이 없으면 고위급 인사의 추천이 아니고서는
 

인턴십에 들어가는 예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일에 대한 열정’이었다. 아무런 인맥도 경력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경쟁했지만, 그것은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인턴 생활을 할 때
그녀는 늘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고, 일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편한 옷차림으로 다녔지만, 지니 오는 자기 옷도 모자라서


엄마 정장까지 숨겨 두었다가 매일 갈아입고 다녔다.

방송국 안에서 의도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취재 내용이든, 어느 곳이든 불평 한마디 없이 쉬지 않고 뛰어다녔고, 
자신에게 업무를 준 사람들에게 100퍼센트 만족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이 있는 날은 하루에 열 일곱 시간씩 초인적으로 일했는데, 그야말로 목숨 걸고 일하다시피 했다.
그 열정이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니 오는 마침내 주류로 진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짓말 6 “아무래도 길이 없는 것 같아”










함신익이 1988년 이스트만 음악학교 박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였다.
지휘를 전공하던 그에게 가장 답답한 것은, 직접 오케스트라 앞에서
지휘 연습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악보만 보고 연습하는 것보다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연습하면 실력이 더 크게 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졸업 후 일자리를 찾을 때는 예외 없이 경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지휘 경험은 매우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연습할 기회는 매우 적었다.

함신익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팠다. 직접 오케스트라를 조직한 것이다.

그는 먼저 연주 계획을 확정하고 포스터까지 만든 다음에야 단원 확보에 들어갔다. 
학생 개인 우편함에 오케스트라 조직에 대한 취지와 협조를 부탁하는 내용의 쪽지를 넣었다. 
그렇게 해서 한 명 한 명 단원을 섭외했다. 하지만 구속력이 전혀 없어서, 

연주회가 닥쳤을 때 사정상 빠지는 학생이 종종 생겨 난감할 때가 많았다.

연주를 할 적당한 장소도 찾기 어려웠다. 돈을 줄 수 없는 대신 음식을 해 먹였는데,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관리 아래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점차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나중에는 오디션을 보아야 할 정도로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연주 장소도 흔한 로비에서 교회로, 그리고 나중에는 이스트만 대학의 대극장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극장 사용료는 원래 연 50만 불이나 되었다.

이를 통해 함신익은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향후 다양한 곳에서 활동할 
연주자들과 교류하고 리더십을 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이후 에벌린 필하모니, 그린 베이 심포니 등 여러 오케스트라를 성공적으로 키워 냈고, 

그의 활약은 미국 ABC TV에 특집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길은 만들면 생긴다. 세상의 그 어떤 길도 처음부터 ‘길’이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 처음 지나가고, 그를 따라 다른 사람이 연이어 지나가다 보니까 바닥의 풀이 죽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거짓말 7 “시간이 없어서…”

성공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다. 무얼 좀 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짬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쉴새 없이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인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들은 종종 소일거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늘상 하고 다닌다. 시간이 없다는 틀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간을 더 만들어 낼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그 말을 현실화시키고 만 것이다.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사람은 
편안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서 늘상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때로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도전하기를 꺼릴 때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걸리는 시간은, 더 높은 곳을 향하지 못하고 자신과 타협하여 
평범한 곳에 머물며 낭비하는 시간보다 훨씬 적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이루어진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곧 ‘세상에 마실 물이 없다’라는 것과 같다. 주위에는 당장 마실 물이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면 물을 얻을 수 있는지는 다 알고 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없다고 생각되어도 우리는 부족해 보이는 시간을 창출할 수 있다.

부자들은 시간이 더 많아서 많은 부를 이루었던 것이 아니다. 
위대한 발명가들이라고 해서 연구할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허드렛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어서 
자기만의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결코 시간의 여유 속에서 성공했던 것이 아니다.

같은 시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곧 시간을 만들어 내는 관건이다. 같은 신문을 보더라도, 사업가가 볼 때와 샐러리맨이 볼 때는 그 얻는 것이 다르다. 사업가가 돈을 늘리는 기사를 읽을 때, 샐러리맨은 주말에 로또 복권 당첨자 기사를 볼지도 모른다. 

일의 질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과 해낼 수 있는 것과의 차이는
어쩌면 아주 미묘한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린 이걸 어떤 미묘함이든 잘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겠죠..